13월의 문: 7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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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첸로이 part2

13월의 문: 7th
2024.01.23
봄이 사라졌다. 세상에 북풍이 들어찼다. 계절조차 영원하지 않은 시대가 찾아왔다. 예고된 상실이었으나 충격은 덜하지 않았다. 변화의 시대는 사람을 비껴나가지 않는다. 재난은 예외를 상정하고 들어닥치지 않기에 재난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아예 무관하게 지나갈 수는 없다. 클로이 메이필드의 삶도 그렇게 변화했다. 들이닥치는 북풍으로부터 보호하겠노라는 명목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소녀의 목을 졸랐다. 빌어먹은 사랑 덕분에, 소녀는 고립되어간다. 북풍은 몰아치고, 설산 한가운데에, 이해자를 빼앗긴 소녀는 혈혈단신으로 선다. 그래. 나는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지. 네가 내 손을 잡기 전까지는. 돌아온 학교. 졸업을 앞두고 묘하게 들뜨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더는 영원함도 사람도 믿지 ..

14: 첸로이 part1

13월의 문: 7th
2024.01.23
애정 시간이 흘러간다. 수많은 변화가 제 앞을 지나갔다. 그 사이에는 충격을 받을만한 일도 있으며, 부정하고 싶은 일도 분명 있을 터다. 이것들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잡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기에, 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차마 잡지도 못한 채로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가 애정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받고 싶지 않은 인정을 억지로 떠안았기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다. 이 변화는 잡지 못한다. 이 세계가 나날이 마모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아첸토는 생각했다. 아첸토 에드윈의 세상은 그랬다. 이 세상의 변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루하루 열매는 성글지 못하고, 설원을 달려 나가는 것만 같은데, 이 변화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가? 애초에 이 세계의 마지막 ..

10: 믹멜 part2

13월의 문: 7th
2024.01.23
나한테 학교 생활은 뭐였을까. 졸업을 코앞에 남겨둔 크리스마스 무도회의 밤, 멜리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게 됐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건 지난 7년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에 몰두했던 우등생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으나, 동시에 멜리나 바코야니라는 개인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적절했다. 그에게 학교란 단지 학업의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엉뚱한 감상은 대단치 않은 깨달음에서 시작했다. 프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물씬 들뜬 분위기를 풍기며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걸 보며, 멜리나는 문득 이렇게 애들이 신난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간 멜리나는 호그와트 재학생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온갖 학교 대소사에 개의치 않고 줄기차게 자기가 갈 곳으로만 향했으니..

10: 믹멜 part1

13월의 문: 7th
2024.01.23
“가자.” “싫어.” “한 번만 가자니까.” “한 번도 싫다니까.” “왜 자꾸 튕겨?” “왜 자꾸 매달려?” “말이 안 통하네.” “누가 할 소릴.” 미홀은 혀를 차며 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책에 골몰한 멜리나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프롬까지 불과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의 친구는 칙칙한 도서관에 처박혀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일부러 이렇게 행차해 함께 프롬에 가자고 졸라대도 멜리나는 단박에 거절하고 세계 멸망이니 뭐니, 머리 아픈 주제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요즘 호그와트 7학년생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단연 프롬 파티에 대한 이야기였다. N.E.W.T.도 끝났고, 할 일이라곤 졸업식까지 남은 날짜나 세는 것이 전부인 예비 졸업생들에게 재학 중 단 한 번 참석..

09: 이에디

13월의 문: 7th
2024.01.23
*** “이디, 이건 어때요?” 단짝 친구의 발랄한 목소리에 돌아본 이디 그리즐의 턱이 툭 떨어졌다. ‘충격적으로 새빨간’ 벨 라인 스팽글 미니 드레스가 에드나 엘레이의 손에서 살랑거렸다. “올해 보바통 여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인이라는데., 여기 왼쪽 어깨에 드레이프 보여요? 마담 드 메르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래요.” 반댓손에 든 카탈로그의 설명을 연극조로 읊는 친구의 눈가는 언제나처럼 색안경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이디는 어쩐지 그 눈이 장난기로 잔뜩 휘어진 모양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검은 드레스, 긴 검은 드레스, 우아한 검은 드레스, 아무튼 검은 드레스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 앞에 던져진 빨간 옷감이란…. “에디, 이건 빨간색이잖아!” 하지만 제 옷 고르는 일도 제쳐두고 총총..

04: HoneyDD

13월의 문: 7th
2024.01.23
회색의 봄과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옛 명제로 기능하게 될 터다. 괜찮은 척을 아무리 해도 괜찮아질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프네는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늘었고 허니밴디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는 질문을 삼키는 날들이 이어졌다. 래번클로 휴게실의 감수성 넘치는 누군가는 사라지는 계절에 섪게 울었으나 다프네는 울지 않았다. 적어도 다프네와 허니밴디에게 계절은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학교의 모든 것들이 모두의 노력 하에 멸망과는 상관 없는 것처럼 굴러갔으나 문 너머만큼은 아니었다. 봄의 정원이 작열하는 태양빛과 함께 여름의 빛으로 물들어감을 확인했을 때 다프네와 허니밴디가 느낀 감정은 현실적인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환상일지도 몰라." 다프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