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시간이 흘렀다. 10여 년.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대의 끝자락을 말한다고 한다. 세상은 이미 멸망을 향하고 있다. 죽은 땅에서는 까마귀가 울고, 눈물조차 얼어붙어 흐르지 않는 강은 세계의 대부분이라고 하던가.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고, 생을 갈구하고 있으나 언제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지 모를 일이다. 생은 살아가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그저 죽어가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선율은 언제나 저를 감싼다. 멸망의 땅에서 음악을 향유하는 삶이란 사치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예술을 즐기는 이들이기에 사람인 것이다. 저 또한 이를 알고 좋아하는 것을 행하기에 무어라 할 수 없을 터. 음악 속에서 둘러싸여 사는 삶은 나쁘지 않았다. 저가 선택한 삶에 어찌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계산 속에서 손짓을 이었다. 인간은 탐미를 말하고, 이기적임을 드러내니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저 또한 그 속에서 이기심을 드러냈고, 음악을 택했다. 진솔함 따위를 버리니 명예가 뒤따른다.
문은 언제나 나타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만남을 지속한다. 이기적인 삶이나 다른 것들을 무참히 버리고, 우리는 그저 진솔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저는 사실 이곳에서 진솔함을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결국 당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쁜 삶과 만나지 못하는 나날 속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이곳에서, 저는 이게 나쁘지 않고 되레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본래 이기심이라는 것. 저는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에 크게 놀랄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이미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인간들 속에서, 이런 삶이 편하지 않은 건 대부분의 인간이 그리 생각할 것이다. 국가는 역할을 못하고, 이미 얼어붙은 나라는 무수히 존재한다.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현실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다가올 종말은 별 수 없는 것. 이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다니, 되레 무참한 결말이 다가오지 않겠는가? 전쟁은 시작된 곳이 있음에 이곳이 안전하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아첸토 에드윈은 다르다. 이곳에서 참으로 편한 삶을 살아왔다. 음악을 손에 쥐고, 명에와 권력을 입에 문다. 창을 든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이름이다. 쉽게 살아온 삶. 무참한 현실 속에서 계산과 계산 끝에 다다른 얻어온 것. 이곳에서라면 다가올 멸망이라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편히 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하 벙커를 세우던가, 다가온 멸망이래도 인간은 언제든 살 공간을 세워놓지 않았던가. 책 속에서도 이런 말을 칭하고 있다. 문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라고. 인간에게 있어서 포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혜는 모든 것을 말하고, 예언은 모든 것들을 멸하리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인간이 어떻게 그곳에서 손을 놓고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피할 수 없는 멸망. 쉽게 살아온 인생. 그러나 방법을 찾을 인류들. 과거에 속단된 많은 예언.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모순 속. 아첸토 에드윈은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아무래도 별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멸망과 모든 이들을 생각하고, 계산 속에서 편히 살아온 것과는 별개로 이미 아첸토에게는 클로이 미카엘라 메이필드라는 이를 계속 이 문 속에서 만나고 싶다고. 삶이 피곤하다는 말은 전부 거짓이다. 한 사람을 위해서 행복을 향해 뛰어들고 싶다는 감각이 온 몸을 사로잡고 있다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니 계산과 계산 속에서 살아온 삶을 버리고자 한다. 살아온 삶에서 계산을 포기하고자 한다. 아첸토가 쉽게 삶을 살아온 만큼, 욕심이 무수하니, 그는 더욱 쉬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다. 클로이라는 존재는 쉬운 삶을 살게 하고, 그보다 더한 행복을 속삭이고는 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다. 멸망조차 생각하지 못할 그저 궁극의 행복. 아, 아첸토는 그렇게 깨닫고 만다. 저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라고. 욕심과 집착의 속에서 그를 얻고자 하려는 게 제가 갖고자 하는 것이라고.
선율을 뒤로한다. 여전히 부는 곡들이 귓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온다. 문은 제 앞에 놓여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처음 만난 것과 같이 손을 맞잡고 서 있다. 불안은 뒤로 물러난 채 앞으로 다가올 행복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고, 그게 우리의 도피였다. 도망가자, 라는 언젠가의 말처럼 우리는 이대로 행하면 되는 거라고. 아첸토는 언제나 행복을 향해서 행동했으니, 당신이 이곳에서 제 손을 굳게 잡으며 웃어준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선을 넘어 이곳에서 금단의 행위를 선택하자고.
“우리만 생각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클로이.”
영원히, 앞으로. 멸망이 다시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손을 붙잡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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