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첸로이 part2

13월의 문: Adult
2024.03.04

  차라리 사랑받지 않았다면 좋았을지도 몰라. 

 

  잠들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걱정과 불안의 밤이 지나가고 나면 아침에는 눈을 떴다. 그러면 쉴새 없이 해야하는 일들이 밀어닥쳐 왔다. 클로이는 차라리 그 편을 좋아했다. 성실한 것은 헬가가 공인한 그의 장점이었으므로. 오늘 눈을 뜨면 또 새로운 날이다. 그 사실이 클로이를 안도하게 했다. 밤 사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음 날이 왔다는 사실이. 어제가 오늘이 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러나 가끔은 지치는 날이 왔다.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가 끝내는 사람의 마음 한구석까지 얼리는 날이 오는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순간은 꼭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는, 눈 앞에 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그래서 클로이는 그곳이 따듯하다고 생각 할 수 있었다. 봄이 남아있어서, 꽃이 피어서, 거기가 안온해서… 따위가 아니라, 함께 설원을 헤매는 네가 거기 남아있어서. 그래서 그는 문 너머의 삶을 사랑했다. 사랑이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그리고 돌아오면 잠들기 전에는 사랑따위에 대해 고민했다. 

 

  두꺼운 이불을 칭칭 감고 온기에 의지한 채로, 모든 걸 저버리고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사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버리고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사랑에 대해 고민했다. 치열하게 ‘우리’와 ‘모두’에 대해 고민하고 나면 머리 속에는 그런 말만이 남았다. 차라리 사랑받지 않았다면 좋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뜨고 만다. 삶이 기적처럼 나아지는 일은 없다. 고민하던 일이 마법처럼 해결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선택권은 이미 손에 쥐어져있고, 마감 기한은 속절없이 닥쳐올 뿐이다. 불안과 걱정이 밤을 너머 낮까지 침범할 때쯔음에, 클로이는 가지고 있던 가장 달콤한 유혹에 지고 만다…. 사랑해요, 라는 그 달콤한 말에. 

 

  일찍이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자랐을때부터, 클로이가 사랑에 패배할 것은 일치감치 예정되어 있었다…고 클로이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만다. 아첸토 에드윈을 사랑했던 순간부터, 두 사람이 설산을 향해 정처 없는 걸음을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이 모든 결말은 예정되어있었을 뿐이다. 

 

  “응. 나도 사랑해…” 

 

  차라리 사랑받지 않았다면 좋았겠지. 그러나 이미 사랑받았으니, 클로이는 기꺼이 그 사랑에게 패배하려고 한다. 설원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우리’만의 낙원일지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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