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Eternal Love

13월의 문: 7th
2024.01.23

 연회장에서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그곳의 천장에는 지나온 날보다 더 많은 빛의 조각이 걸렸고, 학생들의 졸업과 다가올 프롬을 기념하는 천 장식 또한 그 화려함을 더했다. 호그와트의 하루는, 아스라이 들려오는 종말의 노래를 삼킨 채 나날이 분주해져갔다. 모두 당신들을 위한 것이라, 학생들의 시선을 빼앗기에는 충분했으나 완전한 평화를 모방 할 수는 없었던 그 풍경.

 

 축복의 대상은 더이상 크기와 고성 따위에 매료될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보았고, 알고있었다.

 이따금씩 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상은 저 멀리 분노와 원망의 불꽃이 피어오른다는 것을. 뜨겁고도 싱그러웠던 볕의 부재가 피부에 닿았고, 폐부에 끌어 안을만한 따스한 공기는 점멸하였다는 것을. 

 안온함을 가장한 세계의 벽은 투명했다. 저 멀리서 불온한 북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아리에는 이내 눈을 감았다. 다시금 연회장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현악기의 진동이 제 귀를 덮을 무렵에서야 눈을 떠, 조각한 듯 백색의 아름다운 설원을 내려다 보았다. 가을과 겨울만이 순환하는 세계에서도 어떤 풍경은 지긋지긋한 식상함과 때 타지 않은 아름다움을 양면에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눈송이가 궤도를 잃고 천천히 제 손 끝에 내려앉았다. 덩달아 시간의 걸음도 느려진 듯한 착각은, 아리에가 바라본 낱장의 면을 짐작하게 했다. 우습게도 후자의 것을.

 

 끝과 마지막, 말미를 뜻하는 그림자는 우리와 함께 나고자랐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과 죽음도 같이 할 것이라고. 아리에는 그 사실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비관을 담아 밤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태양이 하늘을 가리킬 때이고, 우울함에 젖어 태양이 지는 하늘을 기다리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양식의 땅을 일구고,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 단편의 반복으로 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직은, 충분히 할 만하다. 

 

 추위에 붉어진 말단의 감각이 무뎌질 법도 하거늘, 이 문장은 마치 타인에게 건네기 위해 존재하는 고백처럼, 제 움직임을 기민하게 재촉하였다. 문득 언어의 수신인이 떠오른 탓이었다. 

 

 북적이던 연회장의 소음이 점차 뭉툭하고 아득해졌다. 그는 이 세계의 완벽한 타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떠나갔을 것이기에.



*



 아리에는 문을 열었다. 우리의 앞에만 나타나던, 우리만이 열 수 있던 그곳의 문을. 노력으로 일상을 꾸며냈던 호그와트의 평화와 다르게, 이곳은 잃었던 봄이 돌아온 듯 모든 것이 과거와 같이 풍요로웠다. 호기심과 신비로움에 아지트라 칭했던 문 너머는 여전히 그 의미로 존재했다. 하지만 아리에는 종종 이곳의 계절을 오려 바깥으로 통하는 창에 붙이는 소망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 이곳의 행복은, 바람과 풍경에는 관계없이… …




“디티, 여기 있었네요.”



 함께하는 이의 존재로 조건을 다하였기에. 한참 찾았어요. 아리에의 인사에 디트리히는 책에 두었던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는 나뭇잎의 빈 틈새로 흘러넘치는 햇살 아래에서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리에는 그 모습이 퍽 여유로워보여, 미소를 지은 채 자연스레 곁을 차지했다. 책의 페이지가 꽤 넘어가 있었다. 저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온 시간을 가늠했다.



“앞둔 행사가 많잖아요. 들뜬 얼굴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길래요.”



 아리에는 오늘 자신이 본 호그와트의 풍경을 종알거렸다. 화려한 축제의 서막, 연주에 맞춰 춤을 연습하는 학생들과 새하얀 하늘과 운동장. 시간을 느리게 조종하는 방법을 찾았다며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어쩌면, 이미 디트리히도 수없이 마주했으나 더이상 위로를 얻을 수 없는 평화를. 그것은 이 공간 속 속해있는 주인공들의 간극이었으나 구태여 언급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색하고 느슨한 웃음을 걸며 디트리히는 답했다. 

 

“다들 즐거워 보여 다행이네요. 같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여기가 더 편해서요. 졸업하면 더는 못 올테고요.”

 

 최근, 그는 종언의 그늘 속에서 마지막을 외우는 일이 잦아졌다. 생과 관계, 지금이 속한 순간들의. 아리에는 풀밭에 닿아 그의 몸체를 지탱하던 손을 맞잡았다.



“아쉽나요?”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망설임을 숨기지 않은 고개가 움직인다. 우리의 공간이었잖아요.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고, 아리에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던 곳. 

 한껏 기분 좋은 단어로 꾸며진 이곳의 묘사를 들으며, 아리에는 그 가치에 대해 공감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졸업 후에도 나와 당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사이가 저무는 것도 아니에요. 새로운 공간, 영국과는 어긋난 시간대의 나라에서 끝 아닌 시작을 맞이할 수도 있죠….

 아리에의 언어는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동화처럼 신비롭고 상냥했다. 그것을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한 치의 거짓이 담기지 않아 더욱 꿈 같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디트리히는 생각했다. 모순적이게도 그렇기에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그 거리감을 반증하듯 얽힌 손을 단단히 잡았노라. 아리에는 꿈에도 모를 사실이었다.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마지막보다, 지금의 행복에도 눈을 둘 곳이 많아요. 디티와 함께 입장할 연회도 제게 그렇고요.”



 그렇게 시선을 옮기다보면, 예정된 마지막도 아주 아득하고 천천히 느껴질 거 랍니다.

 아리에는 그의 곁에 기대었던 몸을 떼어내고 자리에 섰다. 디트리히 또한 나뭇잎을 꽂아둔 책을 덮어두며 밖으로 향할 채비를 갈무리했다. 그의 몸짓은 명백한 동의를 표방하였으나, 기실 시선은 처음 이곳에 도달한 ‘13월의 문’ 너머만큼이나 까마득했다. 

 

 두 연인은 다정한 몰이해의 지평선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의 낙관이 마모되고, 또 언젠가는 그의 비관이 녹아내릴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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